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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의 현장 수기 ‘두려움에서 시작했지만 담대하게 대응’

작성자 관리자
2020.06.03
조회 4624

간호사들의 현장 수기 두려움에서 시작했지만 담대하게 대응

가족들의 만류에도 환자가 있기에 우리들은 현장으로 간다 

암 진단받은 간호사, 확진판정 간호사 등 7인의 스토리 공개


다시 국가적 재난 상황이 발생한다면 언제든 현장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코로나 19와의 전쟁을 한바탕 치른 간호사들의 이구동성이다.

 

대한간호협회(회장 신경림)는 지난 423일부터 58일까지 코로나 19 현장스토리 공모전을 가졌다. 이번 공모에는 수기 50, 사진 38(297), 유튜브(11) 등 모두 99개팀이 참가했다.

 

실무진과 전문가 그룹의 두차례 심사를 거쳐 각 부문별로 보건복지부 장관상 2, 질병관리본부장 3, 그리고 대한간호협회장 수상자가 결정됐다.

특히 수기 분야는 간호가족들도 동참, 따뜻한 가족애와 함께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해 잔잔한 감동을 던지고 있다.

암 진단을 받고도 자원봉사에 나선 남자 간호사, 그런 아빠가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3남매의 응원편지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환자를 치료하다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의 수기는 환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대구로 파견된 간호사는 꼼꼼한 업무일지를 작성한 뒤 원소속 병원으로 복귀해 훌륭한 대응 매뉴얼로 승화시키는 슬기로움을 발휘했다. 퇴직을 앞두고 자원봉사에 나선 간호사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사모곡도 애틋하다.

 

타 병원으로 자원봉사를 떠난 간호사 대부분은 가족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난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지 않으면 다른 동료가 가야하고, 간호사라면 누구든 환자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이러한 동료애가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바이러스와 끝까지 싸우며 환자곁을 지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7인의 수기에 대한 소개와 함께 원본을 첨부한다.

 


첨부 7인의 수기 원본

다음의 내용은 수기 소개 자료입니다

수기 당선자와 취재를 원하실 경우에는 홍보팀(02-2260-2562)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김지선(영남대병원)=보건복지부 장관상

 

필자는 감염내과 병동 간호사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신입 간호사였다. 6년차 베테랑이지만 사람인지라 국가적 재난 상황은 언제나 무섭고 피하고 싶다. 하지만 간호사의 존재이유인 환자가 있기에 재난 속으로 달려간다. 필자는 코로나 19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유튜브를 통해 레벨D 방호복 착용과 탈의 방법을 돌려보며 이미지트레이닝을 한 뒤 지역거점병원으로 파견을 떠난다. 보호구를 입으면 몸이 둔해지고, 고글에는 김이 서려 주사 바늘이 잘 보이지 않는데다 장갑을 두겹이나 끼어 정맥주사가 놓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환자가 편한 부위에 주사를 놓고 싶지만 그냥 혈관이 보이는 곳에 주사를 놓을 수 밖에 없다. 땀이 줄줄 흐르는데 닦을 수도 없고, 눈으로 땀이 흘러 들어가 따갑고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환자 응대를 한다.

파견 근무를 마치고 본원으로 복귀해서도 확진자들을 위한 치료는 계속된다. 파견 근무를 통해 간호사의 업무가 고달프다는 것을 알기에 동료들을 위해 1분이라도 더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고, 업무를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애를 보여준다.

확진 판정을 받아 다른 입원실에 있는 부부를 위한 사랑의 메신저 역할, 안부가 궁금한 확진자의 보호자에게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믿음을 심어주기도 했다.

필자는 코로나 19 사태를 통해 간호사들이 국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임을 절실히 느꼈다. 특히 간호사들은 서로에게도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공감하며 한뼘 더 성장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주리(대구가톨릭대병원)=보건복지부 장관상

 

필자는 호흡기 병동에 근무하는 20년차 간호사다. 코로나 19 관리병동과의 첫 만남은 아픔의 연속이다. 음압기 소음으로 귀는 하루종일 멍해지는 느낌이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소독제의 강한 냄새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특히 온몸을 땀으로 적셔버린 방호복의 공포를 떨쳐버릴 수 없어 악몽을 꾼다. 그러나 필자가 잊을 수 없는 장면은 병원에서 마련한 임종실에서다.

95세 여자 환자는 난청을 앓아 대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은 큰 소리로 얘기하면 들을 수 있다고 요청해 간호사들은 편지를 읽어 주었다. 내용은 엄마! 고마워, 사랑해. 퇴원하면 온천도 가고 꽃도 보러가자.’ ‘할머니 보고 싶어요. 꼭 만나요.’ 였다. 큰 소리로 읽어야 되는데 목이 메어 읽기가 힘들었다. 그리움이 가득한 편지를 읽다보니 간호사들의 얼굴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됐기 때문이다. 이어 방송국에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리얼 다큐를 촬영해 갔는데 TV에서 보는 간호사들의 모습이 자랑스럽고 대단한 영웅들이었다.

이번 경험은 또 다시 힘든 일이 닥쳐도 그때를 생각하며 버틸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었다.

 

 

신혜민(영남대병원)=질병관리본부장상


필자는 20193월 호흡기 내과병동에 입사한 신참 간호사다.

지난 2월부터 70일동안 코로나 치료병동에서 근무했지만 함께 일했던 선배 간호사의 확진으로 자가 격리자가 됐다.

필자는 근무 초기 자신의 수고를 이해해주지 못한 환자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여러 부류의 환자들을 대하면서 넓은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첫 번째 사례는 하루에도 몇번 씩 콜벨을 누르며 간호사들을 지치게 했던 50대 아주머니로 어느날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몇 번의 검사에도 계속해서 양성이 나오는 현실에 대한 속상함과 두려움 때문이었다.

서럽게 우는 아주머니를 통해 어쩌면 가장 두려운 사람은 확진 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환자에 대한 이해심을 키웠다.

두 번째 사례는 임종을 앞둔 할머니다. 필자는 할머니 곁을 지키며 딸과의 통화를 주선했다. 스피커폰을 통해 들려온 딸의 음성은 엄마, 그동안 일이 바빠 자주 보러 못가서 미안해. 그동안 엄마 외롭게 해서 정말 미안해. 엄마 내가 많이 사랑해.”였다.

그때 할머니는 두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고 있었다. 필자는 할머니의 귓가에 대고 할머니도 대답해줘요. 사랑한다고.”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음성보다도 더 크게 말했다. “나도 많이 사랑해라고. 딸과의 아름다운 작별이었다.

70일간의 근무를 통해 필자는 진정한 위로와 격려, 사랑에 대해 알았다.



 

이나윤(영주적십자병원)=질병관리본부장상


사회에 보탬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대구 의료진 파견에 자원한 3년차 간호사다.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대구에 간호사가 많이 필요하대. 내가 가면 도움이 된대라는 말로 설득하며 자원봉사의 물결에 합류했다.

필자가 돋보인 것은 일기 형식으로 적은 코로나 현장의 생생한 기록이다. 파견근무 지역인 대구의료원에서 223일부터 28일까지 경험한 내용들을 업무일지 형태로 꼼꼼히 기록, 3월 원소속 병원으로 복귀한 뒤 동료 간호사들에게 큰 도움을 준 가이드북이 됐다.

파견 간호사는 숙식을 제공받지만 대구의료원 간호사들은 집에 갈 수 없어 구석진 곳에서 잠을 자고 5~6시간 방호복을 입고 일을 하는 모습에 미안함이 컸던 일, 처음엔 헤맸던 정맥 주사도 두겹의 장갑을 끼고 능숙하게 했던 일 등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했다.

대구의료원에서의 경험은 막연하게 두려움을 가졌던 코로나 환자 간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했고, 원 소속병원으로 돌아가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희망을 갖게 해줬다.

필자는 간호사의 처우 문제에 대해서도 느낀 점을 담담히 말한다.

파견 간호사에 대한 보상은 이뤄졌다. 하지만 코로나 지정병원에는 병원 소속 간호사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가며 협업하는 부서의 직원들도 있다. 이 분들도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아직도 코로나와 싸우는 많은 의료진과 환자들과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방원규(간호사 김미래씨 가족)=질병관리본부장상


퇴직을 앞두고 자원봉사에 나갔던 간호사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사모곡이다.

대구에 코로나가 확산되자 김미래 간호사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자원봉사에 지원했다.

서울에 있는 아들은 환갑의 어머니가 나이 제한에 걸려 자원봉사가 거부되길 빌었다. 어머니는 소명을 띤 직업인으로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 마땅히 나서야 한다고 아들을 설득하고 현장으로 떠났다.

영상통화에 비친 어머니는 고글과 마스크 착용으로 얼굴 피부가 짓눌려 있었고, 지친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랑스런 상처라며 아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머니는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의료인들의 고충과 환자들을 케어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했고, 퇴근 후에는 코로나로 헌신을 다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록했던 일기를 언론사에 기고했다.

4주간의 봉사를 마친 어머니는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서도 언제든 위급상황이면 다시 봉사 현장으로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후 아들은 4월말 대구로 내려와 어머니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처음으로 한 것은 헌혈 데이트였다.

아들은 어머니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숨가쁘게 싸워가는 의료인들과 탄탄한 시스템 덕분에 전세계의 찬사를 받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헬조선을 외치며 우리나라를 어둡게 보았던 젊은이들에게도 희망을 안겨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신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말로 깊은 가족애를 보여줬다.

 


유정록(부산역 선별진료소)=대한간호협회장상


유정록 간호사는 4남매의 아빠다. 아내도 간호사다. 그의 아들과 딸들이 아빠를 응원하는 수기를 보내왔다.

사실 유정록 간호사는 위암 진단을 받은 환자다. 비록 초기였지만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코로나 19 사태가 터지자 자원봉사에 나섰다.

2주간 청도 대남병원에서 일하다 지금은 부산역 선별진료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큰 아들 유준열(11)군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게 됐다. “아빠가 2주간의 근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자 막내는 아빠에게 달려가 안기는데, 둘째 여동생은 아빠를 향해 코로나라고 하면서 계속 피해다니기만 했다며 집안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우리 아빠와 코로나 19와 싸우는 의료진과 하나님이 계시는 한 우리들은 코로나라는 전염병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전세계 사람들 모두 힘내세요. 파이팅!!!”이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여줬다.

둘째 딸 예진(9) 양은 아빠가 청도 대남병원으로 갔을 때 정말 두려웠어요. 왜냐하면 아빠가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매일 밤마다 기도했어요. 아빠가 건강하게 돌아오셔서 정말 기뻤어요라며 애교있는 글을 보내왔다.

셋째 딸 예인(7)양은 아빠는 무사이 코로나에 안겔리고 무사이 집으로 도라왔다. 그때 네 마음은 너무 조와다는 틀린 맞춤법에도 정성스럽게 글씨를 쓰며 아빠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다,

 


이모 간호사(Y병원)=이달의 간호사 영웅


환자를 돌보다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은 간호사의 이야기다.

필자는 코로나 사태 초기 보호장구 덧신이 부족해 비닐봉투나 일회용 덧신을 신고 테이프를 고정해 사용하거나, 페이스 쉴드가 부족해 소독약으로 닦고 재사용 하는 등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묵묵히 근무했다.

코로나 병동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만남을 꺼려하는 분위기에서 의지할 곳은 동료 간호사들뿐이었다. 하지만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는 것은 힘들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이 고갈됐다.

100일의 시간이 흐른 뒤 병동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 전수검사에 양성 판정을 받았다.

왜 나인 걸까, 왜 하필이면 내가?”라는 자괴감과 함께 가족과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필자는 자기가 근무하던 병동에 앰뷸런스를 타고 입원했다. 간호사에서 환자로 신분이 바뀐 것이다.

환자 입장이 되어 보니 사람이 그립고 병실 밖을 나갈 수 없다는 현실에 힘이 들었다. 문밖에서 들리는 발소리, 카트 소리, 원내 방송 소리 등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새삼 환자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빨리 치료받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필자가 느끼는 마음의 괴로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주변의 격려와 위로가 다시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